- 지방정부 국제교류의 새로운 방식
[이코노미세계] 한국에 갈 수 없어 한복은 늘 멀리 있는 옷이었다. 죽기 전에 한 번쯤 입어보는 것이 많은 고려인들의 소망이었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사회가 최근 전해온 감사 인사는 단순한 ‘기증 답례’ 이상의 울림을 담고 있었다.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반세기 넘게 이어진 디아스포라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던 전통의 상징이 한 벌의 한복을 통해 다시 호흡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한복 전달은 지난해 말 평택시의 카자흐스탄 방문에서 비롯됐다. 당시 현지 고려인 사회는 “한국을 직접 방문하기 어렵다 보니 한복은 귀한 유물이 됐다”며 “전통 의상을 입어보는 것 자체가 삶의 소망이 됐다”고 전했다. 고려인 강제이주 이후 세대를 거치며 언어와 생활문화는 변화했지만, 한복은 여전히 ‘뿌리’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남아 있었다.
이야기를 접한 평택시는 단발성 방문 교류에 그치지 않기로 했다. 시는 지역 새마을부녀회와 뜻을 모아 총 120벌의 한복을 준비했고, 이 한복들은 국경을 넘어 카자흐스탄 고려인 공동체에 전달됐다. 물량으로만 보면 크지 않은 숫자일 수 있지만, 공동체 내부에서는 행사와 공연, 기념일마다 함께 나누어 입을 수 있는 ‘공동 자산’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지 고려인들은 전달받은 한복을 한국문화 공연과 지역 행사에서 활용할 계획이다. 단순한 의상 착용을 넘어, 세대 간 기억을 잇는 매개체로 삼겠다는 취지다. 젊은 세대에게는 조부모 세대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교육 도구가 되고, 어르신들에게는 잊혀 가던 자긍심을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감사 메시지에는 “한복을 입는 순간,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표현이 담겼다. 한복은 의복이지만, 고려인 사회에서는 언어·역사·정서를 동시에 불러오는 ‘기억의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례는 지방정부의 국제교류 방식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대규모 투자나 경제 협력 중심의 교류가 아닌, 문화와 정서에 초점을 맞춘 접근이 해외 동포 사회에 얼마나 깊이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인 사회처럼 역사적 단절과 이동의 경험을 겪은 공동체에는 ‘상징적 교류’가 실질적 연대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평택시는 이번 한복 전달을 계기로 해외 동포와의 문화 교류를 지속적으로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한국의 전통과 정서를 공유하는 방식의 국제교류를 통해, 단순한 외교 성과가 아닌 사람 중심의 연결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한복 120벌은 숫자로 보면 소박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질문이 담겨 있다. 해외 동포에게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지방정부는 그들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번 평택시의 선택은 그 질문에 대해 ‘문화’라는 답을 내놓았다.
한복을 입은 고려인들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끊어졌던 연결고리를 다시 묶는 장면이자, 한국 사회가 해외 동포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제안이다. 옷 한 벌이 위로가 되고, 자긍심이 되고, 다시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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