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이상기후로 국지성 집중호우와 돌발 폭우가 반복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대응 방식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방치된 개발현장에서 발생하는 토사 유출과 붕괴 사고가 주민 안전을 위협하는 가운데, 용인특례시 기흥구가 행정이 먼저 나서 사고를 수습하는 ‘선제적 응급복구체계’를 본격 가동했다. 사고 발생 이후 책임 소재를 따지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위험을 즉시 차단한 뒤 비용을 회수하는 구조로 행정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
그동안 개발행위허가를 받은 부지에서 토사 유출이나 사면 붕괴가 발생하면, 지자체는 원상복구 명령과 이행 촉구, 행정대집행 절차를 차례로 밟아야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복구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2차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특히 장기간 공사가 중단된 현장이나 사업 주체의 관리가 미흡한 부지에서는 토사 유출이 반복되면서 인근 도로와 주택, 농경지까지 피해가 확산되는 일이 잦았다.
기흥구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사고 발생 즉시 구가 직접 장비를 투입해 응급복구를 진행하고, 이후 보증보험이나 개발행위 허가권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행정 절차보다 시민 안전을 우선하는 대응 체계로의 전환이다.
제도 도입의 배경에는 기흥구 전반에 걸친 개발행위허가 부지의 급증이 있다. 기흥지역 내 개발행위허가 대상지는 2023년 243곳에서 2025년 299곳으로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경사지 훼손, 배수시설 미비, 사면 붕괴 위험 등과 관련한 민원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집중호우 시 토사가 도로로 쏟아지거나 인근 하천으로 유입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단순한 행정 관리 차원을 넘어 재난·안전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기흥구는 사고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위해 굴삭기와 덤프트럭 등 중장비를 즉시 투입할 수 있도록 지역 업체와 사전 계약을 체결했다. 토사 유출이나 사면 붕괴 등 위험 상황이 확인되면, 별도의 행정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구가 곧바로 응급복구에 나선다.
복구가 완료된 이후에는 보증보험사에 이행보증금 청구를 하거나, 해당 개발행위 허가를 받은 개인·법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비용을 회수한다. 필요할 경우 행정대집행법에 따른 대집행 절차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즉, ‘선 복구·후 책임’이라는 명확한 원칙을 제도화한 셈이다.
기흥구의 이번 조치는 이상기후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단기간에 많은 비가 집중되는 최근 기후 패턴에서는, 사고 이후 책임을 묻는 방식만으로는 주민 피해를 줄이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실제 토사 유출 사고는 초기 대응이 늦어질수록 복구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인명 피해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지방정부의 재난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속도”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선제적 응급복구체계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도 남아 있다. 우선 구가 선투입한 비용을 원활히 회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개발 주체의 재정 상태가 불안정하거나 보증보험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비용 회수가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응급복구의 범위와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행정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논란으로 번질 소지도 있다. 이에 따라 사고 유형별 대응 매뉴얼을 세분화하고, 사전 점검과 현장 관리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흥구는 이번 제도가 시민 안전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최근 이상기후로 돌발 사고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사고 초기 대응력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선제적 응급복구체계는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장기 방치된 개발행위허가지도 체계적으로 관리해 안전한 도시환경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기흥구의 이번 시도는 개발과 안전이 충돌하는 도시 행정 현장에서 예방 중심 행정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사고가 발생한 뒤 책임을 묻는 방식에서, 위험을 먼저 제거하고 시민의 일상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다.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 지금, 지방정부의 작은 제도 변화가 도시 안전의 기준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흥구의 선제적 응급복구체계가 다른 지자체로 확산될 수 있을지, 그리고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올여름 장마철을 거치며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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