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 인건비 부담·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우려
[이코노미세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정년 65세’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리는 방식만으로는 노동시장 현실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기도의회가 정년 연장의 ‘연착륙’을 위한 종합 노동정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다.
경기도의회 경제노동위원회는 최근 열린 제387회 정례회 제8차 회의에서 ‘정년 65세 법제화 연착륙을 위한 노동 정책 마련 촉구 건의안’을 원안 가결했다. 이번 건의안은 급격한 정년 연장이 가져올 수 있는 노동시장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건의안을 대표 발의한 경기도의회 경제노동위원회 이용호 부위원장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정년 연장 법안의 한계를 강하게 지적했다.
이 부위원장은 “현재 논의되는 정년 연장 법안들은 대부분 법정 정년을 단순히 60세에서 65세로 수정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며 “이러한 접근은 노동시장 구조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단순한 제도 변경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내 노동시장 구조의 특징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사업장의 상당수는 법정 정년 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년 연장이 실제로 혜택을 받는 계층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사업장의 78.8%는 정년제를 운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년 연장을 법으로 규정하더라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근로자 중심으로 혜택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노동시장 내부의 ‘이중 구조’,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부위원장은 “정년 연장이 특정 계층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노동시장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년 연장이 기업에 미칠 영향도 중요한 변수다. 특히 중소기업은 이미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어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 현재 300인 미만 중소사업장은 약 42만 명 규모의 인력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공서열 중심 임금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정년만 연장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용호 부위원장은 “연공서열형 임금 구조에서 정년을 늘리면 기업 인건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며 “이는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고용 자체를 회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부담 문제를 넘어 청년 고용 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기업이 비용 부담을 이유로 신규 채용을 줄일 경우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기회가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의회는 단순한 정년 연장이 아닌 ‘다중 경로 계속고용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특히 독일의 ‘연금 연계형 계속고용 모델’을 참고한 제도 설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독일은 법정 정년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고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정년 이후에도 노동시장 참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재고용, 단시간 근로, 연금 연계 고용 등 다양한 경로를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경기도의회는 이러한 해외 사례를 참고해 한국형 계속고용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의안 내용은 △정년제 미운영 사업장 등 사각지대 파악을 위한 전국 단위 심층 실태조사 △독일식 모델을 참고한 다중 경로 계속고용 보장책 마련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 △제도 개편 기업에 대한 정부 인센티브 제공 등이다. 이 부위원장은 “획일적인 정년 연장보다 다양한 고용 방식이 병행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년 연장 논의는 고령화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는 중요한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정책이 현실과 괴리될 경우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키울 수 있다. 이용호 부위원장은 “단순한 정년 상향은 현장의 수용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탁상공론이 될 수 있다”며 “노동시장의 현실을 직시한 연착륙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모든 도민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번에 경기도의회 상임위를 통과한 건의안은 향후 도의회 본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 중앙정부에 전달될 예정이다. 건의안은 오는 12월 24일 제5차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된 뒤 대통령실, 국회, 고용노동부 등 관계 중앙부처에 이송될 예정이다. 도의회는 중앙정부가 정년 연장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시장 구조와 기업 현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용호 부위원장은 “정년 연장은 단순히 숫자를 올리는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를 함께 개편하는 문제”라며 “모든 세대가 공존하는 노동시장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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