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는 자궁경부암을 비롯해 항문암, 생식기 사마귀 등 다양한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예방백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접종 비용과 대상 제한으로 인해 상당수 시민은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공백을 지방정부 차원에서 메우려는 시도가 성남에서 본격화됐다.
성남시의회 국민의힘 김종환 의원이 대표발의한 ‘성남시 사람유두종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접종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지난 1월 7일 발의돼, 제308회 성남시의회 임시회 안건으로 상정됐다. 조례안은 상임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이번 조례안은 국가예방접종 체계에서 제외된 시민에게 예방접종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감염병 예방을 통한 장기적 사회적 비용 절감이라는 정책적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조례안에 따르면 지원 대상은 성남시에 주민등록을 둔 26세 이하 시민 전체다. 현재 국가예방접종사업에서 일부 연령과 성별에 한정해 지원되는 HPV 백신 접종 범위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성별 구분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HPV 백신이 여성 중심 예방수단이라는 기존 인식을 넘어, 남성 역시 주요 감염·전파 주체이자 예방 대상이라는 점을 제도적으로 반영했다.
김종환 의원은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질환을 예방하는 1차적 수단”이라며 “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 특성상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필요한 접종”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다수 선진국이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HPV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에 포함하고 있다고 권고해 왔다. 대한감염학회 역시 여성뿐 아니라 남성 접종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만 12세 남아까지 국가예방접종 대상을 확대했지만, 여전히 연령 기준을 벗어난 청소년·청년층은 전액 본인 부담으로 접종해야 하는 구조다. 3회 접종 기준 수십만 원에 이르는 비용은 예방접종 접근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꼽힌다.
이번 성남시 조례안은 이러한 국가사업의 한계를 지방정부가 보완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김 의원은 “국가정책이 미처 닿지 못한 연령과 계층을 발굴해 사각지대를 메우는 실질적 행동”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례안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재정적 논리다. HPV 관련 질환은 치료 과정에서 막대한 의료비뿐 아니라 돌봄 비용, 생산성 손실 등 사회적 비용을 동반한다.
김 의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예방접종은 질병 치료에 따른 의료비와 사회적 손실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며 “보편적 건강권 보장과 함께 재정 효율성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재정의 한계 속에서도 예방 중심 정책이 강조되는 이유다. 조례안에는 예산 범위 내 지원 원칙, 접종 예외 대상, 사업 중단 사유 등 관리 장치도 함께 포함됐다.
조례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공포한 날부터 시행된다. 성남시는 이후 우선접종 연령을 지정해 단계적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다만 실제 집행 단계에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는다. ▲연간 소요 예산 규모 ▲우선 지원 대상 선정 기준 ▲의료기관과의 협력 체계 ▲시민 인식 개선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HPV 백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제도가 마련돼도 접종률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례안은 지방의회가 감염병 예방과 시민 건강권 문제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치료보다 예방’이라는 공공보건의 원칙을 지방자치 차원에서 제도화하려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성남시의 이번 시도는 다른 지자체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국가예방접종 체계의 한계를 지방정부가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또 어디까지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어서다.
HPV 백신 지원 조례안이 단순한 복지 확장에 그칠지, 아니면 전국적 제도 개선 논의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될지는 이제 시의회의 선택과 이후 집행 과정에 달려 있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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